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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213시간' 역대 최장 동해안 산불 취재기



이게 언제 느껴본 기분인가 기시감이 들어 생각해보니 할머니 상치를 때와 비슷했다.

몽롱한 기운에 뭔가 타는 냄새...

자욱한 연기 속에서 잿가루가 밤하늘의 별처럼,

불길은 은하수처럼 보이는 건 영화 같은 슬픈 현실이었다.

평소 로맨틱하다 생각하며 올려다본, 반짝이는 별이 쏟아지던 강원 하늘이 맞나 싶었다.





[목적지는 울진이었는데]

평화로웠던 금요일.

속초에 취재하러 갔다가 보도국에 들어와 마주한 건,

경북 울진 지역이 활활 타고 있는 뉴스 화면이었다.

"저기 삼척 바로 옆인데.. 송이 다 어쩌나?"

옆에 있던 선배의 혼잣말에,

"산불 취재가면 어때요?" 내가 물었고,

선배는 2000년도에 8박 9일 동안

동해안 전역을 휩쓸었던 산불 취재기를 쏟아냈다.

"아라도 산불 취재 한번 해봐야 하는데"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도국 전화가 울렸다.

"한울 원전으로 LTE(현장연결) 가야 될 것 같은데요?"

울진까지 가려면 아직 반도 더 남았는데..

삼척 7번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던 터라,

차에서 내려 차주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경찰의 협조를 받아 텅 빈 7번 국도에 들어섰다.

삼척 LNG 기지를 스쳐 지난 지 얼마 안돼 불타고 있는 산이 보였다.




["지옥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입니다"]

월천터널 사이에 갇혔다.

산림청 소방대 등이 함께 있긴 했지만,

영화에서나 보던 재난 상황 속에 들어와 보니 무서웠다.

휴대전화도 먹통이 됐다.

전파를 전해줄 통신 장비들이 다 타버린 탓이었다.

겨우 통신이 되는 위치를 찾아 선배에게 상황 보고부터 했다.

"아라 기자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라이브 물립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그대로 설명해요.

7번 국도에 갇혔다고 다 라이브로 설명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죠?"

나는 현장연결에서 지옥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과장된 표현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재민들의 감정을 표현하기엔 지옥이라는 단어가 맞았다.

매캐한 연기에 기침을 쉴 새 없이 했다.

잿가루가 날아와 눈이 따갑고 아팠다.

불티에 입고 있던 점퍼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혹시 불티가 눈으로 튀진 않을까 뒤로 걸었다.

초파리처럼 날아다니던 불티는 불길이 세질수록 거대한 물결처럼 다가왔다.

다섯 걸음쯤 앞에서 나무가 다발째 타는 걸 보고 있을 땐,

불티가 용암이 된 듯한데 모여 취재 차량까지 위협했다.

순식간이었다.

사는 집이 타지 않았어도 동해안 지역 주민들이 산불 트라우마를 겪는 게 이해됐다.

그냥 눈앞에서 거대한 불길을 본 것만으로도.




[30분 만에 사라진 불띠]

과거 선조들이 봉화대와 봉수대를 보고

위급한 상황을 알아차렸던 것처럼,

우리 취재차도 불과 연기를 따라 움직였다.

산불 취재 사흘째 되던 날에는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장장 20시간 동안

동해와 삼척을 누비며 생방송 현장연결을 8번 했다.

시뻘건 불길을 배경으로 시청자들에게 산불 상황을 전했을 때도 있었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도 있었지만,

모두 다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산불진화대원들은 열흘 밤낮을 산속에 갇혀 불을 껐다.

밤에는 헬기가 뜨지 못하기 때문에

진화 작업도 멈춰지는 거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깜깜한 밤에도 산림청 특수진화대원들은 산을 탄다.

일렬로 늘어놓은 성냥개비가 타듯,

불길이 띠를 이루며 서서히 마을 아래로 내려오고 있던 동해시 삼화동 비천마을.

밤 10시 반 현장 연결을 위해 8시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생생한 산불 현장을 전하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장면은 MBC만 담았겠다"

워낙 산세가 험했기 때문에 진화대원들이 올라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10시쯤 됐을까, 현장연결 직전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진화대원들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졌던 긴 불띠가 반 토막이 되더니,

현장 연결을 시작할 때쯤엔 불이 거의 다 꺼졌다.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원들은 등짐펌프를 메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신발을 신고 그 험한 산을 오르는 건지,

두껍게 쌓인 낙엽 속으로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그 산을 한밤중에 오르던 진화팀의 모습을 봤다.

이들의 노고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좋은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사건사고 기사보다 귀한 게 미담이다.

특히 재난현장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잘, 미담을 담아내고 싶다.

이웃 동네 진화작업에 손을 보태려고 갔다가,

정작 자기 집을 지키지 못한

동해시 어달동의 한 주민은 당장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는 내 질문에,

"어쩔 수 없죠. 저보다 더 급한 사람도 많은데요, 뭘." 동화 속 주인공처럼 대답했다.

"집은 다시 지으면 되는데,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와 닭들이 다 죽어버려서.."

목줄만 채워놓지 않았으면 강아지들이 도망갔을 텐데...

죄책감이 든다던 그 주민과의 인터뷰 내내

'이렇게 좋은 사람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또 있었다.

산림청과 소방청, 그리고 진화에 나선 육군과 해군을 마주했을 때였다.

물론 절대적인 숫자는 적었지만, 현장에는 여성 대원들도 함께였다.

여군과 여성 대원들이 이리저리 산을 헤매며 소방호스를 들고 같이 뛰는 모습을 봤다.

지난해 폭설 때 도내 한 부대에서 대민 지원을 했다고 자랑스레 내놓은 자료에

"왜 눈은 남자만 치우냐, 여군은 없네" 등의 비난이 쏟아지는 걸 봤던 터라,

이왕이면 여성 대원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인터뷰 할 수 있는 대원이 정해진 군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남성 대원을 인터뷰했다.

여성과 남성, 내가 사는 집과 이웃집의 구분 없이 며칠 밤을 새우며

산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불필요한 비난과 조롱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지역을 아끼는 모두의 마음 그대로, 산불이라는 재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2022년 3월이었다.



[마치며]

밤사이 마을까지 내려온 산불, 불안해서 며칠째 한시도 못 잤다던 동해 망상 마을 주민들.

몇 번이나 따뜻한 차를 주시며 추운데 고생한다며 되려 우리 취재진을 걱정했다.

깜깜한 밤, 산속에서 현장 연결을 준비하다가 화장실이 급해 찾아갔던 비천마을 어느 집.

새벽에도 괜찮으니 필요하면 언제든 와서 화장실을 쓰라던 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기억에 남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좋은 기사의 시작은 좋은 제보!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ara@mbceg.co.kr

이아라
MBC강원영동 기자
양양
"기뻐할 줄도 슬퍼할 줄도 아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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