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후기

"헬기 안 타고 정상 올랐어요" 설악산 단풍 취재기 feat. 대청봉 TMI


[참고 TMI - too much information, 굳이 알지 않아도 되지만 도움도 되는 정보]


[9월 29일 수요일, 퇴근 후 7pm]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습니다. 비를 뚫고 간 곳은 의류 매장, 옷을 사야 했습니다. 옷장에는 온통 정장밖에 없었습니다.

첫 출근 후 이렇게 빨리 산에 갈 줄은 몰랐기에 미처 등산복을 준비하지 않았던 거죠.. 등산 스틱은 꼭 사야 된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스틱부터 찾았습니다. 한 짝에 10만 원.. 두 짝을 사야 했는데, 스틱 값만 20만 원, 조금 부담이었습니다. 그냥 두 다리로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등산 바지 하나만 계산하고 매장을 나왔습니다.

[9월 30일 목요일, 침대에 누웠지만 12am]

어찌어찌 5천 원짜리 등산 스틱을 두 개 사고,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챙기고 자려고 누웠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중청대피소에서 자고 1박 2일로 다녀오는 설악산 대청봉을 하루 만에 간다.. 처음에는 걱정을 별로 안 했는데, 주변에서 힘들 거라고 겁을 줘서 내심 걱정이었는지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잠이 안 왔습니다.

[기상 3am]

알람도 울리기 전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전날 산 등산바지에 런닝용으로 가져온 얇은 바람막이를 입고 회사로 향했습니다.

[출발 5:27am]

오색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길에 영상취재 선배와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에너지바를 6개 집어 들며 "또 뭐 필요하지??? 우리 저녁까지 먹을 거 사가야 돼!! 배고플 텐데" 선배의 두 눈은 흔들렸습니다.. "선배 우리 전쟁 나가요?"




새벽 5시. 생각보다 산 속은 깜깜했습니다. 전날까지 비가 온 탓에 등산로(등산 바위라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는 미끄러웠습니다. 영상취재 선배가 헤드 랜턴을 챙겨주신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바위에 앉아서 에너지바를 먹고 있는데,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던 분이 "다 왔어요! 한 100m만 더 가면 돼요"라고 말해주셨습니다.

4시간 반 만에 대청봉에 올랐습니다. 올라오는 건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체감으로는 한 3시간 정도 오른 줄 알았는데, 시간은 어느덧 4시간 반이 흘러있었습니다.




[대청봉 도착 9:57am]

"우와 선배 저기 보세요 진짜 멋있어요"

단풍 든 설악산은 그야말로 '물감을 흩뿌린' 수채화 같았습니다. 그냥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는 많이 봤어도, 빨갛고 노란 단풍잎과 아직 초록의 잎,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 물들어가고 있는 오묘한 색의 잎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운해도 멋있고, 저 멀리 영랑호와 청초호도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보도국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자, 한 선배는 "3대가 덕을 쌓아야 직접 볼 수 있다는 풍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색코스는 대청봉에 올라서기 전까지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빠르게 대청봉까지 주파하는 길이라, 둘러둘러 경치를 구경하는 코스가 아니었습니다. 대청봉 비석 옆에 서자 비로소 단풍이 물든 풍경이 보였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혼산(혼자 등산)'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매년 9월 30일마다 첫 단풍을 보러 설악산에 오른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대청에서 등산객 인터뷰를 마치고 중청대피소로 향했습니다.

등산객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많아야 3명, 거리두기는 잘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중청대피소장님을 만났습니다. 뜨거운 차를 주시길래 호호 불면서 마시고 있는데, 땀 흘리는 걸 보셨는지 "걸어오셨어요???? 아니 그럼 찬물 드려야지" 후다닥 찬물을 가져다주셨습니다. 귀한 물... 한잔의 물에 정상을 올라오는 등반객들의 고귀한 걸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마도 가득 담겨 있을 겁니다.

올라오는 길에 목이 타도 아껴먹고 있었는데 벌컥벌컥 신나게 물을 마셨습니다. 소장님 인터뷰를 마치고 스탠드업을 촬영했습니다. 뉴미디어팀에 바로 보낼 영상을 찍어 보내고, 선배는 드론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빵을 먹을 시간! 김밥에 샌드위치에 형형색색 도시락통을 꺼내는 등산객들이 부러웠지만.. 애써 외면하며(?) 빵을 펼쳐놓았습니다. "이게 점심이에요?" 벤치 위에 빵을 펼쳐놓는 제가 불쌍했는지 소장님이 컵라면을 두 개 갖다 주셨습니다. "오예!! 횡재다!!!"




[하산 시작 1:15pm]

어느 길로 내려갈까 고민이 됐습니다. 오색으로 다시 내려가는 건 겁이 났습니다. 오는 길에 봤던 오색코스는 사실상 '돌 미끄럼틀(?)' 같았습니다. 올라오는 건 어떻게 이겨냈는데, 내려가는 건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백담사 코스가 제일 완만한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백담사보다는 어려운데 오색보다 쉬운 코스는 한계령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계령으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3분의 1은 어렵고 3분의 2는 쉽다던 한계령...은 정말 선배와 저의 '한계'를 느끼게 했습니다. "차라리 오색으로 갔으면 빨리라도 갔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위에 미끄러질 수 있어서 사실상 '앉아서' 내려오는 수준의 길이 3분의 1이 아니라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4시쯤 지나자 점점 힘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장비까지 메고 올라갔던 선배는 한쪽 어깨가 내려앉은(ㅠㅠ) 것 같았습니다..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더 힘들 것 같아서 한참을 참다가 "선배님 점점 무릎이 아파요" 한마디 했는데, "너는 이제 무릎이 아프니? 난 이제 다 아파..."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계령의 경치를 보니 고통을 잊을 정도로 멋졌습니다. 기암절벽 너머로 웅장한 산 능선이 보였습니다. 달력에 있을 것 같은 사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래도 한계령으로 오길 잘했다!" 마음의 위안을 하며...




5시쯤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선배들도 걱정이 됐는지 하나둘 전화를 하시고.. 중청대피소장님도 전화로 어디쯤 갔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소장님 이제 곧 한계령 삼거리인데, 여기까지 차 못 오나요?" '삼거리'니까 차가 올라올 수 있겠다는 선배의 물음에, "아 제가 운전해서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삼거리는 그냥 '세 갈래 길'이었습니다.

6시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아직 1km가 더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1시간에 1.5km씩 온 것 같으니 아직 1시간도 더 남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계령 코스는 마지막이 고비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아니 이미 고비 다 지난 거 같은데 언제까지 고비야!!!"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평소 노을 사냥꾼(노을 사진 찍는 거 좋아함)인 저는 참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어봤습니다..




노을은 잠깐뿐. 금세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다시 꺼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가방 속에 있던 헤드 랜턴을 다시 꺼냈습니다. 다리는 풀리고 발목도 풀렸습니다. 발바닥도 아프고.. 다음엔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를 사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등산 스틱을 꼭 가져가라는 조언을 해주신 한 선배에게 정말 x 100로 감사합니다.... 하는 생각을 하며... 7시 15분 드디어 하산 끝!!

[마치며]

코로나 이전에는 첫 단풍이 드는 9월 말, 헬기를 타고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운이 좋은(?) 저는 코로나 덕분에(?) 14시간 코스의 설악산 첫 단풍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3대가 덕을 쌓아야 직접 볼 수 있다는 멋진 풍경도 보고.. 나중에 (생길지 모르겠지만) 후배가 생긴다면 할 말도 생겼습니다. "라떼는 말이야~ 헬기 안 태워준다고 하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설악산 단풍 리포트 하루 만에 말아오고 그랬어~~~"



이아라
MBC강원영동 기자
양양
"기뻐할 줄도 슬퍼할 줄도 아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사건사고, 부정부패, 내부고발, 미담 등 관련 자료나 영상도 함께 보내주세요.

▷ 전화 : (강원영동) 033-650-2210 (춘천) 033-254-4560 (원주) 742-3112

▷ 자료/영상 보내기 : mbcje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