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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지하 1km에서 무슨 일이"..태백 막장, 그들이 사는 세상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페리온, 100층 넘는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까지.

"현대인들은 점점 더 높은 곳을 갈망한다. 내 자신도 그랬다."

그런데 반대로 무저갱같은 지반 아래쪽은 어떨까?

석탄 채굴 현장의 종착지, 막장. 말 그대로 고단함의 상징같은 곳이다.

지하 막장은 영상으로만 접해봤을뿐, 아직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곳이었다.

탄광 취재를 위해, 섭외한 곳은 태백 장성광업소다. 이곳의 작업은 주로 지하 1,045m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지표면 위쪽의 석탄이 고갈되면서 점점 더 깊게 들어가 채굴하는 이른바 '심부화(深部化)' 때문이다. 석탄을 캐면 캘수록 그들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채굴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현장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탄광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매일 탄가루가 묻어도 티가 잘 안 나는 작업복, 오로지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해야 하는 안전모를 착용해야 했다. 탄광은 그 자체만으로 위험한 전쟁터다. 탄을 캐다 메탄가스와 지하수가 터져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컴컴한 탄광 입구를 마주하자 덜컥 겁이 났다. 지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폭 4.9m 높이 3.05m의 터널을 걷고 또 걸었다. 바닥은 탄가루와 진흙이 온통 뒤섞여 울퉁불퉁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타는 '수직갱도' (엘리베이터)까지 30~40분을 걸었다. 발에는 벌써 엄지 손톱 크기의 물집이 생겼다.

지하 900m까지 몸을 맡길 '수갱'의 모습은 철장과 같았다. 사람이 타는 공간의 이름도 실제 케이지(Cage)였다. 문을 잠그고, "출발"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지하로 끝없이 내려갔다. 속도는 1초에 5m 가량. 가지고 간 온/습도 단말기의 숫자가 시시각각 변했다. 그렇게 2~3분을 내려가니 지하 탄광에 도착했다. 숨이 턱 막혔다.



습도 95% 숨 쉬기조차 힘들어

막장 가까이 더 다가갈수록 습도와 온도는 치솟았다. 당시 외부 기온은 20도 초반, 습도는 40%대였다. 하지만 지하 탄광의 온도는 30도를 웃돌고 습도는 무려 95% 넘게 올랐다. 여기에 두꺼운 작업복에 방진마스크까지 쓰니 등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가뿐 호흡을 했다. 그런 환경에서 탄광 노동자들은 쉼 없이 탄을 캔다. 검은 가루가 온 몸을 휘감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삶의 고단함을 느낄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탄광 노동자들은 노령화된 지 오래다. 석탄 사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된 1989년 이후 석탄 사업이 사양화된 지, 벌써 30년 넘게 흘렀다. 한때 6천 명 넘던 노동자 수는 6백여 명으로 곤두박질쳤다. 마찬가지로 생산량도 2백 20만 톤에서(1980년) 지금은 19만 톤으로 떨어졌다. 하나 둘 탄광을 떠났지만, 변하지 않은 건 오직 남은 자들의 고단하고도 반복된 일상이다.

현장에서 만나본 탄광 노동자들의 말엔 과거의 그리움이 묻어났다. 오래 전부터 함께한 동료들의 퇴직, 곳곳이 폐쇄된 갱도들까지. 모진 세월은 그들의 숨결이 닿은 무엇인가를 하나둘 앗아갔다. 최근 폐쇄 조치된 '2수갱'도 그랬다. 2019년 6월에 작업이 중단됐다. 지상이라면 먼지가 쌓였겠지만 지하 900m는 달랐다. 철로의 나무 곳곳엔 새하얀 곰팡이가, 고철엔 녹꽃이 피어났다.



  320곳 중 4곳만 남아

장성광업소 노동자들은 지하 막장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이제 직감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 때문이다. 한때 320여 개에 달하던 탄광은 단 4곳만 남았을 뿐이다. 대표적인 탄광촌인 태백시는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다. 관내 총생산의 25%를 차지하는 탄광이 사라지면, 미래도 없다. 하지만 대체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채 모진 세월만 흘렀다. 75년 기준 12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벌써 4만 명조차 깨질 위기에 놓였다.



석탄의 가치는 추락했지만 탄광을 전부 없애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바로 안보 때문이다.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고 에너지원을 수입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자급자족이 가능한 석탄이라도 캐야 한다. 식량이 안보라는 말이 있듯, 석탄도 때에 따라서는 매우 가치가 있다. 이렇게 안보와 낮은 경제성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동안, 탄광은 이제 극소수만 남았다. 오늘도 장성광업소의 노동자들은 탄광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밟으며, 매일 캄캄한 1km 지하 탄광 속으로 들어간다. 지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봐주는 사람은 없지만 가족을 위해, 안보를 위해 오늘도 검디 검은 석탄을 캐고 있다.


이준호
MBC강원영동 기자
태백정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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