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Image

background

숨 1 – 전쟁 준비

영동지역은 지금도 속초와 고성, 양양군 현북면 이북 지역은 38선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이른바 ‘수복지역’입니다. 1945년 광복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터질 때까지 북한이 전쟁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그들의 등 뒤에서 본 사람들이 여전히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인민군이 기차로 양양 연창리 동해북부선 종착역까지 기차로 무기를 수송한 뒤 지금의 국도 7호선을 따라 38선 인근까지 전진 배치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직접 목격했습니다.


background

숨 2 – 전쟁의 시작

새벽 4시에 인민군이 전면 남침해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대전을 빼앗기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우리 6.25 전쟁사는 서울 위주의 전쟁사입니다. 그렇다보니 새벽 4시 인민군이 전면 남침을 하기 전 새벽 2~3시 무렵 지금의 정동진 바로 북쪽 해변인 강릉 등명해변과 삼척 임원해변으로 인민군 부대가 상륙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의 국도 7호선을 따라 남북에서 밀려오는 적을 피해 당시 동해안을 지키던 국군 8사단이 서쪽으로 후퇴하면서 전쟁의 양상도, 학살의 양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background

숨 3 – 학살의 시작

갑작스러운 인민군의 남침은 이승만 정부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국군은 최전방에서부터 급히 후퇴했고, 대통령 이승만은 부랴부랴 대전으로 피신했습니다. 국민들은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정작 자신은 가장 먼저 도망쳤고, 전쟁 초기 일주일간의 다급했던 정부 각료들과 이승만의 행적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민족의 증언> 제1권에 상세히 언급돼 있습니다.

국군은 원주와 횡성에서 끌고 가던 형무소 재소자들과 국민보도연맹원들을 급히 처형합니다. 두 곳을 합쳐서 학살당한 사람이 무려 천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후 학살은 국군의 후퇴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계속 이어집니다. 국군과 이승만 정부의 적은 인민군이었을까요? 내부의 또 다른 적이었을까요? 둘 모두였을까요?


background

숨 4 – 학살 : 마구 죽이다

대전에는 한 장소에 무려 8천 명 이상의 시신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구 낭월동 ‘산내골령골’이란 곳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시신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실제로 간혹 진행되는 유해 발굴 사업을 하면 좁은 공간에서 수십 구의 시신이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신은 하나같이 고꾸라진 그대로의 모습이고, 두개골에는 총상이 있습니다.

7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유해 발굴은 전체 추정 매장지의 1/10도 하지 못했습니다. 묻을 땐 아무 곳에나 묻었겠지만 지금은 하나같이 땅 주인들이 있어 그들이 반대하고 있고, 유해 발굴에 필요한 예산도 법 조항이 없어서 국가가 지원하지 못하고 있어 지자체가 예산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자체장이 반대하는 경우나, 지방의회가 반대하는 경우 예산이 마련되지 못해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021년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background

숨 5 – 영동지방의 학살

영동지역에는 인민군을 신사적인 사람들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쟁 초기 점령군인 인민군은 순식간에 남한 땅을 장악해 통일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남한 주민들을 상대로 선민정치를 펼쳤다고 증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국군이 서쪽으로 후퇴해 전쟁 초기엔 치열한 전투가 없었던 것도 인민군이 잔인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그에 반에 국군은 후퇴하면서 물건을 약탈하고, 국민보도연맹원 등을 학살하는 일이 있어 잔인한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군이 동쪽으로 쫓겨 태백산맥을 따라 북으로 후퇴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전쟁 초기 국군이 그랬듯 인민군은 후퇴하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또, 북한 땅에서는 북한 내 우익인사들과 남쪽에서 납치해간 사람들을 마구 죽였습니다. 전쟁 초기 국군의 학살을 인민군이 영상으로 기록해 선전에 활용했고, 수복 이후 북한에서의 인민군의 학살을 국군이 영상으로 기록해 선전에 활용했습니다.


background

숨 6 – 피해자

강원영동지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도 피해 사실을 나서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과거사 진상을 밝히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했지만 영동지역에서는 선뜻 나서는 사람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피해를 말하는 사람도 적었지만 국가도 적극적으로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동지역은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학살은 다른 동네에서나 있었던 일인 것처럼 5년의 진상 조사 기간은 흘러갔습니다. 취재진은 그렇지 않다고, 영동지역에서도 많은 학살이 있었고,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다고, TV 방송을 통해 약 1분 30초 동안 자막으로 피해자 명단을 방송했습니다.


background

숨 7 – 납북자

다큐멘터리 취재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전국의 시,군 가운데 당시 강릉군에서 가장 많은 납북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강릉은 38선 이남의 가장 첫 번째 동네이자, 6.25 전쟁이 가장 먼저 시작된 동네이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한 갈래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이 벌어졌을 만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좌익 계열이 일찌감치 활약하던 지역입니다. 광복 이후엔 몽양 여운형 선생이 현재의 강릉고등학교 자리인 초당동에 ‘초당의숙’을 세워 후학을 길러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6.25 전쟁기를 거치면서 좌익과 우익이 가장 치열하게 대립했던 동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였을까? 전국의 시,군에서 가장 많은 납북자가 발생한 곳이라는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당시 납북된 사람들은 누구의 가족이었을까? 그 납북자들의 가족들은 납북자들을 찾지 않는 것일까? 강릉 지역사회는 이 문제를 왜 그 동안 연구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background

숨 8 – 학살 가해자가 강릉시장에 임명

경남 거창 양민학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으로 6.25 전쟁 기간 중에 알려진 사건입니다. 또 가장 먼저 특별법이 제정돼 국가폭력을 인정받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국군 11사단에 의해 마을 주민들이 비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심지어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불로 태워 죽이고,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당시 지역 국회의원에 의해 이 사건이 알려지며 당시 사건 가해자 가운데 3명이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고, 가해자들은 사형과 무기징역,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받습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당시 국군 소령 계급의 한동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이승만은 이들은 즉시 사면했고, 한동석은 이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에 의해 제5대 강릉시장으로 임명됐습니다. 한동석의 사진은 강릉시청 2층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 방송 이후 그의 사진 옆에 강릉시장으로서의 공과 함께 ‘학살자’라는 그의 과오도 함께 기록될 수 있을까요?


background

숨 9 – 71년 전 그때 그 사건

이번 다큐멘터리 '숨' 취재 과정에서 미국 국가기록원에 있던 71년 전 강릉 학살 사건에 대한 당시 미군의 조사기록을 입수했습니다. 영어와 한문으로 기록돼 있는 이 자료들에는 여러 지역에서의 학살 사건에 대한 당시 주민들의 진술이 적여 있는데 취재진은 이 가운데 한 사건을 그래픽으로 제작하기로 하고 원문에 대한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특히, 한문의 번역을 강릉향교에 의뢰했는데 놀라운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릉지역에서 벌어졌던 큰 학살 사건이었기 때문에 입소문이 나서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이 사건을 아는 분들이 있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당시 사건의 생존자가 있다는 말씀까지 귀한 정보를 듣고는 수소문 끝에 서울 여의도에 살고 있는 당시 사건의 생존자를 만나 생생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71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선명히 기억하고 있을 뿐아니라 생존자의 아내는 이 기록의 필체가 당신의 아버지 필체라는 점까지 확인해주었습니다.


background

숨 10 – 다큐멘터리 제목을 '숨'으로 정한 이유

피해자들을 부둥켜안고 피해자 가족들과 필자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순간, 마치 피해자들의 원혼이 이렇게 저와 가족들을 이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2년 전 다큐멘터리 숨의 막바지 촬영을 하던 서울에서 만난 어르신은 아버지가 양양에서 학살당하셨습니다. 세월이 너무 흘렀고, 당신은 피해자 개인일 뿐이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아무 것도 풀어드릴 수 없어서 가슴 아프다며 우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서야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려주셨다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 떨리는 입술 위로 눈물이 흘러 맺혀 있다 떨어졌고 그 순간 내 앞에, 내 카메라 앞에 앉아 계신 그분의 거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숨’으로 정했습니다.


background

숨 11 – 국가는 가해자다

국가는 학살의 명백한 가해자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사과하지 않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요? 많은 피해자들이 국가의 사과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사과를 하기 위해선 우선 정확히 조사해야 합니다. 그런 조사를 위해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6년의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나 지금의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피해자들이 접수를 하면’ 우리가 조사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고령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복잡한 서류를 작성해 가해자인 국가에 제발 조사를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숨은 진실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일개 지역방송사 취재기자 한 명이 수백 명의 피해자와 가족, 목격자들을 찾아 진술을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아직도 당시 학살 사건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데 국가는 지금껏 무엇을 했나요?


background

마치며...

이번 다큐멘터리 숨은 특이하게 2부가 먼저 2019년에 방송됐고, 2년여 지나서야 1,3부가 제작돼 다시 완전한 3부작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 '숨'을 기획할 때, 제주 4.3 사건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강원 영동지역에서 다뤄보자는 생각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과 학살 사건이 해당 지역에서만 소비되고 우리 지역에서는 관심 없이 지나갈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실제 4.3 사건의 취재를 거의 끝마친 뒤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 국가폭력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명이라도 피해자를 만날 수 있을까? 엄청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가는 마을마다 학살 피해자 가족이나 목격자들이 있었던 겁니다. 어렵사리 말씀을 꺼내시는 피해자들을 보며 방송사 카메라 대신 작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뷰를 받으러 영동지역 곳곳을 돌아다녔고, 어느 새 100명을 훌쩍 넘는 인터뷰가 쌓이게 된 겁니다.

결국 인터뷰의 앞에 왜 이런 학살이 발생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부분과, 인터뷰의 뒤에 그래서 앞으로 우린 이 학살 사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말하는 부분을 생략한 채 오직 영동지역 피해자들의 인터뷰만으로 기-승-전-결을 구성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겁니다. 그리곤 이후 2년간 1편과 3편을 기획해 이번에 3부작을 방송하게 됐습니다.

정선 아리랑 오르골

저는 1,2,3부의 마지막 장면들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구상했습니다. 특히, 음악감독과 음악을 구상한 시간이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부의 마지막에 전쟁과 학살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방의경의 ‘불나무’를 배치했고, 2부에는 황병기의 ‘미궁’이라는 음악으로 피해자의 원혼을 표현했습니다.

3부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인터뷰를 해주셨던 모든 인터뷰이들의 모습을 담았고 정선아리랑을 배치했습니다. 특히, 정선아리랑 오르골을 직접 녹음해 배치했는데 5번 넘게 다른 곡을 쓰려고 시도하다 제가 집요하게 주장해 결국 정선아리랑 오르골을 썼습니다. 제가 정선아리랑 오르골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느낌은 ‘윤회’였습니다.

이 삶에선 억울하게 죽어야 했지만 다음 생에선 아름다운 곳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과, 남겨진 가족들 역시 다음 생에선 억울하게 돌아가신 가족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과, 모든 사건의 진실이 지금 이 시간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꼭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움’이라는 느낌을 담은 정선아리랑을 약 20초마다 똑같은 음이 반복되는 오르골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내레이션

1부 내레이션 성우를 고민하던 2020년 가을쯤, 생각 없이 거실에 틀어놨던 TV에서 영화 ‘군도’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고, 이 목소리와 비슷하지만 좀 더 묵직한 여성의 목소리를 찾던 끝에 연출자 입장에서 정확히 1부의 느낌과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았습니다. 바로 김상현 님이었습니다.

2부는 인터뷰만으로 구성하다보니 내레이션이 없었지만 3부는 1,2,3부를 정리하고, 취재한 사람이 직접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 그 메시지를 가장 무겁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출자인 필자가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지난 3년여간 다큐멘터리 취재를 마친 뒤, 전국의 피해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연락을 받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 신청을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내용부터, 다큐멘터리를 유튜브로 보는 방법을 묻는 내용까지 다양합니다. 80대 후반에서 90대에 이르는 이 어르신들이 서류를 써서 접수하면 조사를 할지 말지 봐주겠다고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국가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image
다큐멘터리 숨 1부 '두 개의 적'
image
다큐멘터리 숨 2부 '강원지역 학살기록'
image
다큐멘터리 숨 3부 '학살의 굴레'